테레지엔슈타트에서
이번에 저희는 동쪽으로
소를 운반하는
루스 엘리아스(이스라엘)
이틀을 그렇게 갔어요
- 이틀째 되는 날 밤에...
12월이었어요
그래도 안은 따스했어요
온기를 만들었어요
서로 모여서
어느 날 밤에
이틀째 밤에
차문이 열리자마자
엄청난 고함 소리가 들렸어요
다들 소스라쳤어요
저희 눈엔 개를 데리고 있는
멀리서부터
대체 거기가 어딘 지
저 수많은 불빛들은
계속 고함은 질러대지
소 몰듯이?
네, 정말 그랬어요
"빨리,빨리,빨리" 하면서
찻칸에서 내려
그 때
줄무늬 옷의 사람들이
그 줄무늬가 뭔지
제가 어떤 사람한테 체코어로
폴란드 사람인데 체코어를 알아들었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우슈비츠가 뭔지
우리는 B2B 구역의
아이들과 남자,여자
아직은 심사 되지 않은 채
남자 수용소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한테 와서는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사람들을
우리는 그 말을
그 가족수용소에는
3개월 전에
그 사람들도
여태 아무도 안 끌려갔고
전혀 믿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프라하 근처의 게토
그 사람들은 다 특별구역 중 하나인
2B
당시 나는 B2A 에서
B2A 와 B2B 사이엔
넘나들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아침
아주 놀라운
가족들과
다 함께 있으면서
짐들도 막사에
삭발도 안 당하고
이건 뭔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도무지 짐작이 안 갔지만
그런데 중앙 등록실
이 사람들한테 모두
다음과 같은 꼬리가 붙어서
"SB,6개월 간 격리"
SB는
가스실을 말하겠죠
격리라는 말도
도무지 모를 일이었어요
사람을 6개월씩이나
'SB'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 'SB'의 뜻이
그냥 가스실 보류인지
6개월이면
12월에
12월 20일 경에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그 때도 4천 명 정도가
먼저 온 사람들과 같이
이 사람들도 남녀와 아이들이
젊은이와 노인들
머리도 그대로고
입고 왔던
확실히
특별막사에
거기서 아이들이
물론 아주 안락한 생활은
몹시 비좁았고
6개월 동안
천명이 사망했어요
- 1천명이...
네,하긴 했어도
막사들 사이로 길을 내던가
SS들은 편지도
편지를 써서
이동했어요
화물칸에 실려서
1943년 체코 테레지엔스타트에서 강제추방
- 겨울에요?
체온으로 몸을 녹였어요
열차가 멈췄어요
"나와, 나와, 나와!"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인지
SS들만 보였어요
불빛들이 쭉 비췄어요
뭔지 의아했어요
"나와,나와,나와!"
다들 줄지어 섰어요
보였어요
전혀 몰랐어요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봤어요
'아우슈비츠'라고 하더군요
전혀 몰랐어요
알 도리가 없었죠
'가족수용소'라는 곳으로 갔어요
모두 함께
그랬어요
죽음의 수용소다
태워 죽인다"
믿지 않았어요
테레지엔슈타트에서 9월에
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믿지 않았어요
태운 적 없었으니까
체코계 유대인들로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왔어요
B2B에 수용 됐어요
등록 업무 일을 했어요
전기 철조망이 쳐져 있었어요
대화는 가능 했어요
등록 명단을 점검하다가
상황을 발견했어요
남자,여자,아이들이
아무도 가스실로 가지 않았어요
그대로 지니고 있었고
원래 머리 그대로
다른 상황이었어요
특별한 경우였어요
아무도 몰랐어요
사람들 말로는
특별카드가 있다고 했어요
'특별대우(Sonderbehandlung)'로써
그런 뜻이겠고
대기 시켰다가 가스실로 보낸다니
하는 문제가 있겠죠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지
3월 7일이 만기였어요
수송이 한 차례 더 있었어요
온 걸로 기억됩니다
B2B 수용소에 합류했어요
함께 지냈어요
모두 함께요
짐도 그대로
옷차림 그대요였어요
다른 대우를 받았어요
아이들 학교도 짓고
연극 공연도 했어요
아니었어요
먼저 온 4천명 중에
- 노역을 했습니까?
수용소 내의 일이었어요
새 막사를 짓던가 하는
쓰게 했어요